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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s of Gaze
이광호, DALMAJI, 29 August - 26 October 2025

Traces of Gaze: 이광호

Forthcoming exhib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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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es of Gaze, 이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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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화랑은 2025년 8월 29일부터 10월 26일까지 이광호 개인전 〈시선의 흔적 Traces of Gaze〉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20여 년 만에 다시 선보이는 초상화 8점과 2017년부터 이어온 Wetland 연작 76점을 포함해 총 90여 점을 공개한다.

 

핀홀 렌즈라는 원시적 광학 장치를 통해 포착된 흐릿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된 초상화는 완벽한 재현을 거부하며, 더듬거리듯 이어지는 붓질의 층위를 통해 '시선의 흔적'을 드러낸다. Wetland 연작은 즉흥적이고 자유로운 붓터치로 촉각적 감각을 시각화 하려는 작가의 지속적인 실험에서 비롯되었으며, 의도적 확대와 추상성 앞에서의 시각적 진실에 질문을 던진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조현화랑_달맞이의 창을 등지고 있는, 눈을 감은 초상화와 마주한 관람자는 전시장 두 벽면을 따라 펼쳐진 Wetland 연작 76점이 전체 풍경의 일부이자 독립된 화면으로 존재하는 촉지적 공간 속으로 들어서게 된다. 보이는 것 너머에 자리한 회화의 본질을, 자연과 인간이라는 두 시선의 대상을 오가며 지속적 응시, 곧 'Gaze'를 통해 성찰하게 하는 이번 전시는 관람자가 이광호의 시선 안으로 들어가도록 초대한다.

 

보는자의 계보 (The Lineage of the Seer)

 

화가 이광호 (1967년생)는 전통 회화 기법과 이미지와 관계된 현대적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왔다. 특히 모더니즘 이후 양분된 서사와 비서사의 회화적 경계를 넘나드는 그의 풍경화는 감각과 지각의 대상으로 존재하는 세계의 실재를 작가 고유의 신체성으로 우리에게 증명한다. 이러한 이광호의 회화적 특징에 대해 이은주는 “…대상들이 원래 가질 법한 분명하고 확정적인 형태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자가 더듬거리며 이어 나간 듯한 붓질들의 쌓임을 통해 체현된 것” 이라고 정의 내린 바 있다. 화가 역시 자신의 붓질을 스스로 ‘매너(manner)’라고 이름 붙인 회화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다. 그의 ‘매너’는 특정 양식을 지칭하는 미술사의 매너리즘과 (Mannerism)과는 사뭇 다른 개념으로, 숙련의 과정을 통해 정형화 되는 양식이나 교육을 통해 전수 되는 기술이 아닌 화가 고유의 신체에 속하는 감각의 통합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애무하듯 그린다'는 그의 표현처럼 대상과의 정서적 유대를 동반한다.

 

그러므로 매너로서의 붓질은 이광호가 대상의 객관적 실재성을 구현함에 있어 촉각을 얼마나 중요시 여기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상을 대하는 태도까지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러나 이광호의 회화는 단지 실재 세계를 화면에 감각적으로 재현하거나 우리의 눈을 현혹하는 감탄의 대상으로 만드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시각과 촉각이 교차하며 발생하는 '감각의 교란 '(Derangement of the senses)으로 자신의 캔버스를 촉지성의 공간(haptic space)으로 만들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시 한번 '본다'는 감각에 더 집중하길 원한다. 마치 19세기말 프랑스 사회의 정치적 혼란과 급속한 산업화로 자신이 속한 세계가 빠르게 변해가고 있음을 감지한 랭보(Arthur Rimbaud)가 『투시자의 편지(Les Lettres du voyant)』(1871)에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보는 자, 스스로 보는 자가 되어야 한다”(I say that one must be a seer, make oneself a seer)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서구 근대 인식론은 시각을 가장 확실한 인식의 토대로 삼고, 감정과 주관을 배제한 ‘객관적’ 관찰을 이상으로 지향하는 망막중심주의(Ocularcentrism)를 구축함으로써, 청각·촉각 등 다른 감각들을 주변화 했다. 이러한 시각의 위상 때문에 우리는 시인이 말하는 ‘보는 자’(seer)를 눈 앞의 대상을 엄밀하게 규정하려는 이성적 시선만으로 오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랭보가 원했던 것은 이와는 정반대의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예민한 감수성으로 더욱 강렬하게 감지했던 시대의 불 안을 극복하기 위해 이성적이면서도 자기 파괴적인,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들의 교란'(the derangement of all the sense)으로 기존의 체계와 질서를 무너뜨리고 그 위에 새로운 시의 언어를 세우고자 했다.

 

기계처럼 돌진하는 이성의 시대에 맞서 감각을 전면에 내세운 랭보의 전복적 시도는 스스로 시인의 길을 포기함으로써 실패한 듯이 보였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드러내길 서슴지 않았던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회화에서 부활한다. 그는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에서 자신의 그림 속 인물들이 왜곡되어 있는 이유를, 자신은 포르노그라피적 자극을 그리려 한 게 아니라 "이미지의 실재를 가장 날카로운 형상으로 전달하려는 실험" 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것이 랭보가 시도했던 감각의 교란 같은 것이라고 덧붙인다. 인간이 가진 본래적 폭력성을 깊숙이 찌르는 베이컨의 ‘날카로운 형상’ 은 분명 우리의 감각에 충격을 가한다. 그는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그린다. 피비린내, 비명, 통증… 화면 속 일그러진 신체는 치열하게 우리의 신경 시스템을, 신체의 감각들을 건드린다. 극단적으로 폭력적인 시대를 겪었던 베이컨의 회화에서 감각의 교란은 또 다른 폭력, 혹은 성스러운 폭력의 수단이 된다.

 

베이컨이 ‘모든’ 감각의 교란을 동원한 데 반해, 이광호는 촉각에 집중한다. 그에게 감각의 교란은 시각이 동반하는 거리감을 무화(無化)시키는 기술이다. 120명의 사람들을 그렸던 ‹인터-뷰› (2005-2008) 프로젝트에서 그가 촬영, 대화, 인물을 상기시키는 오브제 등과 같이 회화 이 외의 것들을 필요로 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타인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던 젊은 화가는 영리하게 자신이 숨을 수 있는 장소를 마련했다. 이 은신처에서 단련된 눈의 감각은 ‘그리는’ 손끝 을 통해 촉각을 자극한다. 옷, 머플러, 머리카락을 그리며 감각의 교란을 훈련한 이광호의 시선은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자신의 감각의 장으로 끌어들였다. 촉각이 발동하는 순간은 존재와 존재가 겹치는 순간이다. 촉각은 시각이나 청각같이 대상과의 거리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또한 후각, 청각, 시각처럼 일방적인 감각도 아니다. 타인의 신체를 소유할 수 없기에, 그가 눈앞에서 사라지면 촉각의 기회 또한 소멸하고 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촉각은 내가 만지는 순간 나 역시 만져지는, 지각을 공유하는 감각이다.

 

조현갤러리에서 열릴 개인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광호는 다시 한번 초상화를 그리기로 마음 먹는다. 2006년 창동스튜디오 레지던시 기간 동안 발표된 ‹인터-뷰› 프로젝트의 일부로 발표된 초상화 시리즈는 청년 작가 이광호의 존재를 미술계에 알린 작업이었다. 그로부터 20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른 지금, 화가가 다시 초상화를 그리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그에게 회화의 출발점은 늘 ‘시선’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나이와 함께 변화하는 신체의 감각, 특히 눈의 감각을 정면으로 마주하기 위해서 였다.

 

시선, 그리고 흔적들 (Gaze and Traces)

해운대 바다를 내려볼 수 있는 조현갤러리의 공간적 특징에 매료된 이광호는, 이 공간이 가진 개방성과 독특한 폐쇄성에 대해 자주 이야기했다. 전시에 대한 그의 구상은 처음부터 명료했다. 갤러리 2층 공간의 한 면을 습지의 풍경으로 가득 채우고 같은 공간 어딘가에 눈을 감은 초상화를 거는 것이었다. 그는 이 초상화가 전시장을 지키는 (혹은 감시하는) ‘지킴이’(Invigilator)가 되는 것을 상상했다. 나는 그의 아이디어가 동시대 미술에서 공간이 연출하는 제의적 장치를 연상시키는 동시에, 그럼에도 회화가 시선을 통해 완성되는 예술임을 재치 있게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광호는 이전 전시에서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든 미묘한 장치를 설치했었다. 옅은 핑크색으로 칠해진 갤러리 벽과 같은 색의 코트를 입은 모델이 오프닝 행 사 동안 전시장을 천천히 걸었던 이 퍼포먼스는 마치 회화의 환영이 육화(肉化)된 것처럼 보였었다.

 

조현갤러리에서 열릴 ‹시선의 흔적›을 구상하며 이광호가 하고 싶어했던 '육화된 회화' 에 대한 이야기는, 점차 ‘화가의 눈’이라는 주제로 변해갔다. 특히 새로운 ‹블로우-업(Blow-up)› 시리즈 <Untitled 4652>(2024)가 걸릴 2층을 그는 최대한 고요하고 시적인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어했다. 우리는 유리창으로 외부 자연풍경을 그대로 들어오게 하면서도 그 창을 가로막는 큰 벽을 세워 예술의 공간을 확보한 2층 공간의 작은 방을 주목했다. 그리고 벽 뒤에 있는 공간을 ‘화가의 눈’, 정확히 말하자면 바다를 향해나있는 갤러리의 유리창을 거대한 수정체로 본다면 그림이 걸릴 갤러리 안쪽 공간은 시각 정보를 처리하는 ‘화가의 뇌’가 된다는 설정을 만들었다. 하지만 갤러리 유리창을 통과하는 외부 세계의 이미지와 이광호가 그린 ‹Untitled 4652›가 일 치하지 않기에 이 아이디어를 포기하게 됐다. 그럼에도 화가의 신체 감각을 은유하는 장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우리는 지속적으로 이광호의 회화에 대해 비평작업을 해온 김남시 교수의 글에서 돌파구를 찾았다. 그는 ‹블로우-업(Blow-up)› 시리즈에서 제기된 화가의 시선의 문제가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카메라의 광학 기능에 빗대어 밝혀냈다. 그는 ‹블로우-업(Blow-up)›을 통해 화가 이광호가 '되돌려 받지 못할 시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보지 않고/보지 않으면서 보는', 고도화된 역량을 갖게 되었다고 감탄했다. 이 글을 다시 읽으면서, 나는 최초의 카메라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를 떠올렸다. 게다가 '카메라'가 방(Camera)을 뜻하기에 조현갤러리의 2층 작은 방은 카메라가 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 계획 역시 본격적인 전시 준비에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폐기 되었지만, 이광호의 새로운 초상화에 대한 기획에서는 일부 실현되었다.

 

1990년대 중반, 처음 장만한 리코(Ricoh) 디지털 카메라의 화면 분할 기능을 사용해 그린 ‹나의 그림›(1996)에서 이광호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신체와 시선을 화면에 등장시켰다. 이후로, 시간과 함께 화가의 시력은 점점 나빠졌지만, 디지털 카메라에서 거울을 대체한 ‘센서(Sensor)’는 비약적으로 발전해왔다. 그러나, 촉지적 공간으로서의 회화에서 시각과 촉각의 전이가 감각 을 증폭시키듯, 화가의 몸을 거울 대신 센서가 장착된 ‘미러리스 카메라(mirrorless camera)’로 본다면 눈의 역할은 어떻게 될지, 특히 감각의 전도로 화가의 몸을 통해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 감각의 교란' 의 결과로서 이미지의 현상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순간, 이광호는 자신이 직접 거울의 표면을 연마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는 캔버스 화면을 손으로 연마해서 상이 맺히는—결 국 다시 거울을 만드는—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고 싶어 했다. 특히 오래된 청동거울의 표면을 문질러 서서히 상이 맺히게 하는 유튜브 영상 링크를 찾아 보내며 이미지와 관련된, 회화 외의 ‘광학’과 ‘물성’에 대해 어린아이 마냥 신기 해했다. 나는 거울을 만들겠다는 화가의 도전에 대해 생각해봤다. 만일 ‘세계의 투영으로서의 이미지’나 ‘회화에서 재현의 우연성 혹은 불가능성’에 대 한 질문을 던지고 싶다면, 리히터(Gerhad Richter)의 쇠구슬처럼, 혹은 ‹거울(Mirror)›(1981) 이나 ‹회색 거울(Grey Mirror)›(1991)처럼 개념에 걸맞는 매끈한 물성을 찾아내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청동거울의 무엇에 이토록 화가가 매료되었기에 직접 거울을 만들겠다고 하는지를 나는 온전히 이해하고 싶었다.

 

민감한 감각과 욕망에 집중하는 그의 작업이 즉흥적으로 이뤄질 거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광호는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자신이 세운 계획에 따라 놀라운 집중력과 속도로 그림을 그리며 보낸다. 그는 예의 성실함으로 캔버스에서 거울을 만들 수 있는 재료와 기계를 모두 구입 했고, 동료 작가에게 조언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앞서 우리가 계획했던 모든 개념적 설치들이 무화 되었듯, 거울을 만들겠다는 그의 기획 역시 실행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청동거울의 흐릿 하고 불완전한 이미지를 ‘경험’하는 것만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거울 대신, 또다른 광학 기술 인 렌즈를 떠올렸다. 그리고 핀홀 렌즈(Pinhole lens)로 대상을 촬영하고 그림으로써 자신만의 청동거울을 연마하기로 했다.

 

낮은 해상도로 촬영되는 핀홀 렌즈는 깊은 심도와 미세하게 흐릿하고 부드러운, 마치 고운 모래 같은 표면 질감을 만들어낸다. 아주 작은 구멍으로 빛을 받아들이는 이 렌즈는 긴 노출 시간을 필요로 하는데, 이 느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상의 미세한 변화가 한 장의 이미지에 담기게 된 다. 그래서 핀홀 렌즈로 촬영된 이미지로 그려진 새로운 초상화에서는, 젊은 날 날선 시선으로 구분하고 탐험한 결과로 쟁취한 뚜렷한 윤곽선, 각각의 모델들이 가진 서로 다른 물성에 개별적으로 반응하며 화가의 감각을 전달하는 데만 몰입했던 그의 붓질이, 이제는 인물의 내면을 드러내는 색과 자신을 받아들이는 캔버스 천의 질감까지 촉각의 대상으로 빨아들이게 되었다.

 

그가 처음 촬영한 모델을 그린 ‹Untitled 9578›(2024)과 ‹Untitled 9494›(2024)는 핀홀 렌즈의 장노출을 좀 더 드라마틱하게 활용한 것이다. 긴 금발 여성을 두 번 그린 이 초상화들 속에서 모델은 눈을 들어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전의 모습과 시선을 내면에 간직한, 눈을 감고 있는 상태로 등장한다. 젊음의 순수함과 레트로의 식상함이 마치 종교화의 '성'(聖)과 '속'(俗)처럼 대비되는 이 두 점의 초상화에서 모델의 얼굴은 곧 등장할 시선의 무대가 된다. 정수리에서 흘러 내리는, 무대 커튼처럼 양쪽으로 열린 금발 머리카락은 곧 시작될 시선의 향연을 알린다. 어쩌면 바로 이 순간이 스펙타클을 기다리는 관객과 배우 모두에게 가장 설레는 때일 수 있다. 이광호는 바로 그 떨리는 순간을 회화를 통해 확대(blow-up)했다. 대상을 확대해서 본다는 것은 물리적 이동 없이 거리감을 좁히는, 그럼으로써 촉각을 자극하는 행위다. 이 과정에서 그가 본 것은 몸을 통해, 손에 쥐어진 붓을 통해 캔버스에 흔적을 남긴다. 이제 시각과 촉각이 동시에 작동된다. 화가의 손은 시신경과 말초신경이 일으키는 무수한 불꽃 의 에너지를 담아 물감을 섞고, 캔버스를 누르고 긁으며, 운동의 리듬을 지닌 흔적을 남긴다. 화가의 눈은 끊임없이 이 흔적들을 검토하고 조율하고, 손은 이를 수행한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화가는 끊임없이 자신의 시선을 재구성한 화면을 통해 스스로를 마주한다. 이 치열하고 내밀한 과정의 결과 앞에 우리는 언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세계와 기억을 바라보고, 느끼게 된다.

 

 

에필로그

 

첫 초상화가 완성되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가 청동거울의 불완전한 이미지에 빠져들었던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이광호에게 이미지는 손으로 회화의 표면을 문지르는 촉각적 노동의 과정 속 에서 서서히 드러나는 시선의 흔적(traces)이다. 청동거울의 흐릿한 상은, 자연 앞의 모든 회화처럼 대상의 완벽한 재현이 아니기에, 오롯한 자신으로서 진실한 존재가 된다.

 

“세계는 보여지기를 바라고 있다.” (Le monde veut être vu.)

 

바슐라르는 모네(Claude Monet)가 수련을 바라본 이래로, 수련은 더 아름답고 더 커다랗게 되었다고 말한다. 철학자가 화가의 예술에서 발견한, 시선에 화답하는 세계를 이광호는 자신의 습지 풍경 속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그 세계의 풍경을 다시 타자의 존재 속에서 찾아낼 준비가 되었다. 조현갤러리의 전시 제목을 ‹시선의 흔적›이라고 알려주면서 이광호는 제목 속 ‘시선’의 영어 단어가 ‘Gaze’라고 덧붙였다. 그는 자신의 시선이 ‘본다’는 감각의 차원 너머 지속성을 가진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 지독한 기다림이야말로, 마침내 그를 ‘보는 자’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가스통 바슐라르, 『꿈꿀 권리』, 이가림(옮김), 열화당, 1980.

김남시, 「Blow-up」, 『Blow-up』, 국제갤러리, 2025.

아루투르 랭보,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견자의 편지』, 김현(옮김), 민음사, 2004.

이은주, 「촉지적 풍경」, 『Lee Kwang Ho』, 국제갤러리, 2014.

질 들뢰즈, 『감각의 논리』, 하태환(옮김), 민음사, 2008.

프랑크 모베르, 『인간의 피냄새가 내 눈을 떠나지 않는다: 프랜시스 베이컨과의 대담』, 박신주(옮김), 그린비,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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