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won Dae Sup: 권대섭

조현화랑(해운대)은 조선 백자의 전통적인 방식을 현대적으로 해석해온 권대섭 작가의 개인전을 개최한다. 권대섭은 지난 2021년 1월 조현화랑의 첫 전시에서 백자항아리 11점을 공개하면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21년을 마무리하는 이번 전시에서는 백자와 함께 문방사우, 주병, 사발 등 소형 작품을 최초로 선보인다.

 

관요의 전통을 잇다

현재 권대섭의 작업실이 위치한 경기도 광주는 조선 왕실 도자기를 구웠던 관요(官窯)의 맥을 잇는 지역이다. 15세기 중엽 조선왕실은 궁중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전담하는 사옹원(司甕院)을 두었다. 특히 광주 지 역은 수도에서 가깝고 양질의 백토(白土)가 산출되어 사옹원의 분원을 두고 국가가 직접 가마를 운영하기 적합했다. 왕실의 그릇을 전담해온 광주 관요에서는 10년에 한 번씩 땔감을 찾아 가마를 이동했다. 주변의 나무가 모두 소진되면 다시 나무가 많은 곳으로 이동해야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현재 광주시에는 321개의 가마터가 만들어졌고, 지역 자체가 관요의 전통을 보유하고 있다. 권대섭 작가는 1979년 일본 오가사와라 도예몬에서 수학 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광주에 가마를 지었다. 다행히 분원이 있던 지역은 일부 개발지역을 제외하면 사적으로 보호되었고 작가는 직접 옛 도요지를 찾아다니며 도공들의 흔적을 찾았다. 버려진 가마터의 구조를 살피고 땅 밑에 버려진 자기의 조각들을 수집하며 연구했다. 조선시대 왕실 도자기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기운까지도 계승하기 위한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자기의 재료와 형태, 제작과정에 대한 독자적인 연구는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조선백자의 전통적 방식 계승

권대섭의 대표작품인 ‘달항아리’ 백자는 17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사이 조선왕조에서 왕성하게 제작된 자기다.  조선중기 이전에는 궁중해서 실용적으로 사용했으나 조선후기를 지나고 현재까지는 실용적 목적보다는 장식으로, 작품으로 인정받게 된다. 권대섭의 백자는 설백색이라 칭하는 우윳빛의 원형이 매력을 뽐낸다. 입자가 곱고 불순물이 완전히 제거된 질 좋은 고령토를 사용하여 최고의 원재료를 고집한다. 권대섭은 조선시대 도공들이 수준 높은 노하우를 모두 체득했는데, 불을 최고 1,400°C 이상까지 올리면서도, 큰 백자와 작은 소품을 한 가마 안에서 고르게 다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  1년에 10회 내외로 가마를 가동시키는데, 성공률은 50%이내다.  이에 대해 “나의 실력과는 별개로 자연의 도움 없이는 완성될 수 없는 과정”이라 말한다.  권대섭 자기의 가장 큰 특징은 절제된 아름다움을 지닌 한국적 정서와 작가의 현대적 감각이 더해졌다는 점이다. 작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부분은 반질반질 윤이 아니고 어느 부분은 탁하다. 완벽한 비례를 거부하면서도 균형감을 잃지 않는다. 조선시대 담백한 순정의 미의식뿐만 아니라 유약과 불을 활용한 변칙의 맛이 있다. 이는 백자뿐만 아니라 작은 소품들에게도 해당된다. 형태가 제각각 인 소품들 하나하나가 순박해 보이면서도 세련되고 안정감이 있다.

 

소품에도 백자의 맛을 입히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대형 백자들보다 소품들이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데 필요한 문방사우(文房四 友), 차를 마실 때 필요한 다구(茶具), 술자리를 위한 주병(酒甁), 사발과 작은 항아리 까지 다채로운 형태 의 자기들이 첫 선을 보인다. 문방사우는 종이, 붓, 먹, 벼루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때 필요한 4개의 벗을 칭한다. 권대섭은 이들을 보조하는 붓통, 연적, 문진 등을 자기를 빚듯 제작하였다. 다구의 경우는 크기별 종류별 찻잔은 물론 다관, 다호 등이 작품화 되었다. 또한 술을 담았던 주병도 하단의 볼록한 아랫부분과 상단의 주둥이까지 비례가 아름답게 꾸며졌다. 표면은 매끄러운 곡선 혹은 각병으로 제작되어 단순함 속에 다채로움이 있다. 전체적으로 손바닥보다 작은 작품부터 50cm가 넘는 자기까지 그 크기가 다양하다. 소품들의 경우 좋은 재료를 엄선하는 것은 물론 백토의 성질을 이해하고 가소성을 찾아 변형하고 꾸미는 세밀한 작업이 중요하다. 작가는 작은 것은 작은 것대로 그 맛을 살리는 중요함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크기가 큰 벽시계보다 손목시계에서 더 높은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비록 이제는 실용품으로 쓰이지는 않지만 그 형태와 미감 안에 고매한 선비의 정신이 담겨있다.

권대섭 작가는 40년이 넘는 시간동안 도예 작업에 매진해 왔다. 그리고 최근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열린 2021년 문화예술발전 유공자로 선정되어 백자의 아름다움과 우수함을 세계에 알린 역할과 중요성을 인정 받아 ‘화관 문화훈장’을 수상했다. 하지만 작가는 아직도 갈 길이 멀다고 말한다. 흙과 자기를 다루는 일은 40년을 반복하면 서도 매번 다르다. 어쩌면 그것이 작품 활동을 계속 해나갈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다. 본 전시를 통해 도예가 권대섭의 다양한 작품들을 새롭게 확인하고, 그가 추구한 사대부의 정신과 기상을 살 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