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Bae : 흐르는

5월 10일부터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이배의 개인전 『흐르는』이 열린다. 전시장의 회화, 조각, 영상은 형식이 모두 다르지만, 작가의 신체성을 기록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작가는 조각을 회화처럼, 회화를 입체처럼 다루는 시도를 통해 형식을 해체하고 ‘신체성과 순환’이라는 본질로 다가가고자 한다. 특히 <버닝(Burning)>은 처음 시도한 영상 작업으로, 그가 매체 확장을 위하여 꾸준한 고민과 실천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준다.

숯을 언급하지 않고는 이배를 설명하기가 어렵다. 1991년부터 30년이 넘도록 함께 해온 숯은, 작가의 정체성이자 순환의 상징이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숯 그 너머를 보여주고자 한다. 『흐르는』에서 숯은 움직이는 ‘순간’ 이후엔 볼 수 없는 작가의 신체성을 가시적으로 남게 해준다. 나아가, 움직임의 기록들이 형식 사이에서 변환되고 확장되는 매개가 되어준다.

이배는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사고 능력이자, 동시에 인식 범위의 한계를 만드는 ‘개념의 범주화’를 벗어나고자 하며, 이 과정을 숯과 함께한다. 개념의 범주화란, 대상들의 공통적 특징을 통해 하나의 울타리에 넣어 분류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조각을 마주하였을 때 ‘입체로 존재하는 미술’이라는 개념에 사고를 가두어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과 같다. 이번 전시에는 조각, 설치, 회화 <붓질>, 영상 <버닝> 등 다양한 형식이 존재하지만, 작가는 각각의 작업을 매체의 특성에 가두어 바라보는 시각에서 자유롭고자 한다. 조각을 회화처럼, 회화를 조각처럼 다루고 영상을 제작한 것은, 본인의 움직임을 다양한 형태로 담기 위함이며, 신체성이 매체를 넘나들며 기록된다는 것을 전달하고자 함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보이는 2m 90cm의 조각 <붓질>은 조각 9개를 겹쳐서 제작되었다. 9개의 입체들은 같은 공간에서 평면으로 해체되고 차원의 변화를 겪는다. 회화로 변환된 조각들을 따라가다 보면 거대한 평면 작업인 또 다른 <붓질>을 마주한다. 벽의 이미지는 마치 거울에 비추듯 반전되어 바닥에 다시 그려진다. 평면에 그려졌기 때문에 회화라고 자연스럽게 인식되지만, 벽과 바닥에 동시에 위치한 것을 인식하고 나면 2차원과 3차원 모두에 존재하는 듯하다.

18m의 벽을 가득 채우는 영상은, 신체성을 기록하기 위하여 매체적 확장을 시도한 <버닝(Burning)>이다. 지난 2월 청도에서 진행되었던 <달집태우기>의 불길과 <붓질>을 그리는 작가의 절제된 움직임, 그리고 움직임에서 탄생되는 <붓질>이 함께 보여 진다. 영상 속 퍼포먼스와 움직임은, 사라지는 신체성을 기록하고자 새로운 방법을 지속적으로 모색한 결과이다. 시각은 <버닝>을 향할 때 청각은 토드 마코버(Tod Machover)의 <Sailing Through Fire(불을 통과하는 항해)>를 담는다. 영상과 함께 재생될 수 있도록 작곡가와 협업하여 제작된 음악은, 화면에 맞추어 연주되는 첼로 선율로 작가의 메세지를 청각까지 전달한다.

같은 공간에는 또 다른 기록의 확장이 펼쳐진다. 1층에 조각과 벽면의 붓질로 남겨졌던 작가의 움직임이 입체로서 벽과 바닥, 그리고 공중에 위치한다. 이들은 검은색으로만 제작되었던 이전 <브론즈>와 같은 형태이지만, 작가는 마치 회화를 다루듯 겉면을 문질러 검은색을 덜어내고 재료의 물성이 노출되게 하였다. 이 과정을 그는 다른 색을 칠하는 과정이라고 여기며, 조각을 회화와 같이 인식하고 다룬다. 한 편에선 조각이 다시 평면으로 돌아간다. <아크릴 미디엄 (Acrylic medium)> 20점은, 동양화에서 종이에 먹이 모든 동선을 기록하며 스며들듯이, 본인의 움직임을 서양화 기법으로 캔버스 안에 기록하고자 제작한 작품이다. 여러 개의 <아크릴 미디엄>이 직선으로 배열되어 작가의 움직임을 연속적으로 보여준다.

작가의 ‘신체성과 순환’은 고착화된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야만 본질적인 이해가 가능해진다.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에겐 돌파구가 있다. 또 다른 사고 능력인 ‘상징’이다. ‘형식’이라는 범주의 틀을 깨고 ‘신체성과 순환’이라는 상징적 개념으로 그의 작업에 다가가면, 직관적으로 수용되는 순간이 온다. 이는 이배가 지속적으로 매체를 확장하려는 노력과 같다. 전시장 내에서 작가와 관객의 태도가 동일해지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