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ippe Cognée: 필립 꼬네

조현화랑은 4월 11일부터 5월 27일까지 작가 필립 꼬네의 개인전 <과밀도, 현실의 포화 Hyperdensité, La saturation du réel>를 개최한다. 본관과 신관 전체가 사용되는 이번 전시에는 가로 4.2m 세폭화와 가로 4m 이폭화 2점을 포함한 신작 총 22점이 선보일 예정이다. 2006년 KIAF 한국 첫 개인전 이후 조현화랑에서 네 번째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Speakings Walls’과 ‘Towers’ 시리즈를 국내에 처음 소개하는 뜻 깊은 자리이다.
 
필립 꼬네는 사진적 시각과 회화적 풍부함을 결합한 작업으로 1990년 부상한 프랑스 신구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이다. 그는 장구한 회화사의 유산을 현대에 어떻게 반영할 것인가를 고민하며 현대를 이야기하는 이미지들을 그만의 독창적인 밀랍화 기법으로 그려낸다. 안료와 밀랍을 섞어 그린 후, 그 위에 두꺼운 플라스틱을 덮고 다리미로 가열하여 이미 그려진 형태들을 뭉개버림으로써 일그러지고 소멸해가는 시간성을 표현한다. 작가가 직접 촬영한 사진과 비디오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려진 그의 그림들은 견고한 사실주의와 특이한 회화적 마티에르의 우연성, 일그러지고 소멸해가는 시간성이 묘하게 결합되어 가장 평범한 것을 낯설게 만들어 버리거나, 수수께기 같은 이미지로 제시한다.
 
작가는 유년 시절을 보낸 베냉(Bénin)에서 납화법1)을 알게 되었고, 밀랍으로 그림을 그려 염료에 담가 무늬를 넣은 바틱(batik)천에서 크게 영감을 받았다. 그 후 낭트 에콜 데 보자르 재학 시절 재스퍼 존스(Jasper Johns)가 그림에 밀랍을 고착제로 사용하는 것을 본 후 목재를 사용해 조각 작품을 만들고, 화폭 위에서 작업하게 된 것이 지금의 밀랍화 기법이다. 납화는 뜨거운 상태로 놓여도 순식간에 굳지만 다시 데울 수 있다. 작가는 이것이 살아있는 재료이며 자신이 표현하는 바에 가장 잘 들어 맞는 재료라고 한다. 또한, 구축하고 난 후 해체함으로써 보다 취약한 또 하나의 상태를 찾아내는 것, 그림을 이용해 세상에 우리가 인식하는 그대로 위태롭게 만들고 뒤흔드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2007년 조현화랑 개인전에서는 슈퍼마켓, 구글어스 항공뷰, 바니타스(Vanitas)라는 세가지 주제를 선보였다. 현실 세계에 뿌리박고 있는 두개의 주제는 이 평범한 현실을 회화의 영역으로 옮기고자 했고, 세 번째 주제인 ‘바니타스’는 서구 회화사의 시초부터 늘 있어온 회화 주제의 연속 선상에 위치하는 방식이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새롭게 세 가지 다른 테마를 발전시켰다. 두 개 주제는 서로 연결되는 것으로 ‘군중(Crowd)’과 ‘탑(Towers)’이다. 이 두 가상의 주제는 개미나 흰개미, 그리고 서식지인 개미집이나 흰개미집이라는 개념에서 출발한다. 숨도 못 쉴 빽빽하게 들어차 군중을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들과 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 다양한 형태의 바벨탑이 연상되는 건축물들에 관한 가상의 이야기이다. 이성을 넘어설 정도로 점점 더 몸집을 불려가는 도시들에 사람들이 몰려 살아가고 있는 우리 세계에 관한 은유이다. 또한 작품을 통해 그는 개인과 집단, 눈에 보이고 보이지 않는, 현실의 장소와 예술의 장소를 끊임없이 탐구한다. 인물들은 추상적으로 보일 정도로 작고 흐릿한 군중에 녹아 들어있고, 이러한 극심한 밀도의 그림을 직면한 관객들은 더 이상 인물의 이미지를 물질과 구별 할 수 없게 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 보여지는 커다란 군중 세폭화는 각각의 모듈이 수직 구조로 되어 있어 속도감을 주고, 군중을 보다 수직단면화 함으로써 우리 앞에 현존하듯 서 있는 하나의 벽으로 변화시킨다.
 
이 같은 밀도 개념은 낙서문이 있는 붉은 벽돌 건축물들에서도 나타난다. 벽은 세포 조직과 살이 되고 낙서는 문신 또는 표시 행위가 된다. 붉은색은 에너지를 방출하고, 에너지는 사방으로 퍼져나간다. 빽빽한 벽돌들이 주는 속도감은 긴장을 배가하고 낙서는 바탕을 흐린다. 또 하나의 전시 테마는 벽들을 보여주는데, 구글 스트리트 뷰와 여행길에서 얻은 이미지들이다. 이 벽들은 실재에 속해 있지만, 회화의 영역으로 옮겨서 그 실재성을 잃어버린다. 작가는 바탕(벽돌벽)과, 바탕이 되는 벽 위에 겹쳐지는 글자(문신)사이에 어떤 작용을 주고자 했다. 또 이것은 영역 이야기기도 한데,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공간을 표시한다. 세 번째 주제인 ‘탑(Towers)’은 에너지가 형태 내부에 농축되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폭발 직전’이라고 읽힌다. 이처럼 필립 꼬네는 일상생활의 평범함을 초월할수있는 회화의 힘을 탐구하고자 한다.
 
10년만에 선보이는 이번 국내전시를 통해 회화적 질료가 위태로운 표면 위에 쌓이는 그의 독특한 회화기법에 매료되길 기대한다. 또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습을 풀어낸 필립 꼬네의 회화를 마주한 관객들은 꾸밈없는 진솔한 태도로 예술의 에너지를 추구해 온 화가의 탁월한 역량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