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k Nam June: 백남준

조현화랑은 백남준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로보트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선보인다.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간이 교류와 통신을 위해 발명한 모든 것을 – 수레, 글자, 자전거, 자동차, 전화, 라디오, 텔레비젼, 고속도로, 인공위성, 인터넷 등등 – 예술적 컨셉으로 사용한 백남준은 누구보다도 먼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사용했고, 본래의 기능을 넘어서 창조적으로 활용했던 작가였다.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결합인 로보트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작가 활동 초기부터 나타났다.

1964년 제작한 로보트 K-456은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모든 활동에 개입하는 우연에 대한 백남준의 관심을 표현한다. 현대미술뿐 아니라 로보트 공학의 역사상 기억되는 획기적인 사건인 K-456은 리모트 콘트롤 기계장치로서 걷고 말하고 배설할 줄 아는 로보트였다. 1982년 폐기처분 될 때까지 여러차례 퍼포먼스를 했으며 작가가 “21세기 최초의 사고”라 부른 교통사고까지 일으켰다.

백남준의 첫 로보트가 자동 기계였던 것에 반하여 1985년부터는 각종 오브제를 조합하고 비디오 작품을 더하여 인간형태의 토템같은 로보트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시대의 유품이 된 낡은 라디오와 TV 상자들을 조합하여 만든 “로보트 패밀리”는 기발한 상상력과 유머로서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친구 예술가들의 초상을 위시하여 무수히 많은 역사적인 인물과 자화상까지 로보트로 제작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에 붙여진 제목이 바로 “다다익선”이듯이, 양에도 의미가 있다. “나의 로보트들은 인공위성 프로젝트를 재정지원한다”고 솔직히 털어놓던 그였으나 효용성을 넘어서 그의 로보트에는 처음부터 개별적 우상이 아닌, “패밀리” 그것도 전지구적 대가족의 개념이 담겨있었다.

로보트들은 백남준 예술의 진면목을 어김없이 드러내 보이며, 작가가 “비빔밥의 미학”이라고 부른 창조적 혼합을 아날로그, 디지털적으로 화려하게 구사하고 있다. 구식 라디오와 TV 박스를 근간으로 각종 소도구가 첨가되어 한 인물의 캐리커쳐가 만들어지고 TV 화면에는 작가의 비디오 영상이 현란한 조합과 변화의 율동적인 아라베스크를 펼치며 낡은 물건의 조합에 표정과 생명을 불어넣는다. 백남준의 상상력과 유머는 우리의 상상을 즐겁게 자극하며 동시에 시간과 공간이 자유자재로 압축되고 혼합되며 반복되는 4차원의 세계로 인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