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ik Nam June x Collection: 백남준

조현화랑에서는 2017년 8월 20일부터 10월 10일까지 미디어 아트의 개척자로서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이용하여 실험적이고 창의적으로 작업했던 백남준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 이번 전시는 조현화랑의 소장품 전시로써 백남준 작가의 대표작을 중심으로 선보인다. 백남준 전시는 조현화랑에서 2001년 이후 열리는 네 번째 전시로써 그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고 플럭서스 운동의 중심에서 전위적이고 실험적인 공연과 전시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기획되었다. 올해 새로 리노베이션 된 신관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미디어 아트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I Never Read Wittgenstein’, ‘Beuys Vox’, ‘Life is Drama’ 등이 소개된다. 또한 전시기간 중에 풍부한 스토리텔링과 화려하면서 섬세한 구성회화로 세계 미술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헤르난 바스의 2017년 신작과 더불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성, 죽음, 종교, 인종 그리고 정치적인 이슈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길버트앤 조지의 대작도 함께 전시 되어 동시대 미술의 오늘을 감상할 수 있다.
 
예술가로서 백남준의 관심은 아름다움이 아닌 소통이었으며, 동서고금을 통하여 인간이 교류와 통신을 위해 발명한 모든 것, 수레, 문자, 자전거, 자동차, 전화, 라디오, TV, 고속도로, 인공위성, 인터넷을 예술적 컨셉으로 사용했다. 그의 근본적인 주제는 인간의 소통 의지와 그를 위한 발명의 역동성이었다. 또한, 20세기 예술의 전위에서 삶과 테크놀로지, 예술에 대한 다양한 질문을 던졌으며 새로운 예술을 찾아 끊임없는 변혁을 꿈꿔왔다.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창출해 내고자 했던 백남준은 ‘’예술가의 역할은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다’’라는 그의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끊임없이 미래에 대해 고심하고 그것을 통해 얻은 자신의 견해를 표출하고자 했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는 ‘나는 결코 비트겐슈타인을 읽지 않는다’는 색 띠를 그린 벽화와 4대의 모니터로 구성되어 있다. TV 방송 모니터의 조정 화면에서 출발한 색 띠는 북방 유목민과 한민족의 색동과 교차하며 백남준의 예술에 인류문화학적 차원을 더한 바 있다. 벽화와 비디오의 대비를 통해 백남준은 직물 캔버스에 대한 전자 캔버스의 우월성과 가능성을 확인한다. 또한 “누구나에게 분명하게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명제로 유명한 현대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을 반박하는 듯한 제목에서 작가는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도 말 할 수 있는 예술가의 입장을 표명한다.
 
‘비너스’ 작품은 그린카모 색으로 칠해진 큰 반구에 레터링이 되어있고, 작은 텔레비전들이 바람개비 모양으로 주변을 감싸는 추상적 입체작품이다. 반복되는 밝은 색감과 기하학적 형상이 회전하는 영상은 보는이로 하여금 환상속에 빠져들게 하고 블랙홀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한, 패턴처럼 이어지는 TV 영상은 관람자에게 설치 작품 전체가 회전하는 기분을 들게하고, 별자리, 행성, 우주 가까이에 있는 듯한 착시에 빠져들게 한다. 백남준은 이 작품을 볼때 어떠한 통제나 제어없이 자연스럽게 작품속으로 빠져들기를 원했는데, 공상적이고 비현실적인 자각과 그것을 벗어나는 일상적인 자각 상태의 단순한 경로를 보여주고자 했다.
 
‘새장 속 존 케이지’ 작품은 존케이지의 케이지(cage)가 ‘새장’이라는 뜻을 갖는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말 그대로 케이지를 새장에 (in cage)가둔다는 의미의 말놀이이다. 존케이지를 만나기 이전을 기원전이라 부르고, 케이지를 만난 후를 기원후라고 할 만큼 백남준은 그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생각했고, 백남준이 새로운 비디오 아트의 세계를 여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작곡가이다.
 
‘Life is Drama’ 작품은 행성과 해양생물, 올림픽, 한국 전통공연, 작가가 1988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 설치한 ‘다다익선’ 등을 담은 26분 37초 길이의 영상을 TV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다.
 
이번 전시를 통하여 정보 통신이 인류 사회의 모습을 급격히 바꾸고 있는 오늘날 새롭게 평가되고 있는 백남준의 예술적 고찰과 문화적 깊이를 다시금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되길 기대하며, 그가 이끄는 예술과 기술, 자연과 인공이 서로 조화되는 유토피아(Utopia)에 도달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