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ter Zimmermann: 피터 짐머만

2013년 5월 31일부터 7월 7일까지 조현화랑 부산에서는 독일작가 피터 짐머만의 전시가 열린다.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미국시장에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파리의 ‘갤러리 페로탱’에서 ‘오늘날의 거장’ 중 한 명으로 소개하고 있는 피터 짐머만의 이번 전시는 아시아에서는 홍콩에 이은 두 번째 전시로 , , 등 2003년부터 최근까지 에폭시 레진으로 작업된 회화 24점이 소개된다.


피터 짐머만은 개성 있는 작품들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작가이다. 이십 년 동안 이뤄진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두가지 방향으로 나타나는데 1980년도 중반부터 1990년도 초반의 초기 작품은 무엇보다도 커버와 가상이 컨셉으로 두드러진 작업이다. 1980년대에 명작들과 카탈로그의 작품들을 개념화한 컬렉션의 표지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고 이 컬렉션은 예술은 예술로 변한다는 논리로 흥미를 끌었다. 반면에 1990년도 중반부터 생성된 “Blob paintings“는 회화적 모티브의 매체화와 리믹스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작업의 핵심은 기본적으로 회화의 구성이다. 이 작업은 포토그래퍼가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재료를 찾고 대상을 추상화한 다음 포토샵을 통해서 만들어졌다. 에어브러쉬를 사용해 캔버스에 이미지를 옮기고 조심스럽게 이미지 위에 에폭시를 덮어주는 방식으로 추상적이고 다양한 질감을 나타낸다. 작품은 단순히 장식으로 일축될 수 있지만, 다른 재료의 레이어링은 시선을 끈다. 일단 에폭시 수지는 추상적인 형태 안에서 나오는 내면의 빛을 보여준다.
피터 짐머만은 1990년 초반부터 에폭시를 사용하면서 각기 다른 물감들을 섞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캔버스에 부어서 굳힌 다음 템플릿을 떼어내면 작품이 완성된다. 이러한 테크닉을 통해서 작가는 본인 작품의 특징인 마치 공산품인 듯 보이는 반짝이는 표면을 만들어, 회화 매체를 통해 마치 찍어낸 듯한 모습을 표현해 내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구체적인 부분까지 모두 묘사된 모습이지만 그 문자적 의미는 상실되고 또한 그림의 문맥 안에서 추상적 기호로 변환된다. 때때로 문자를 그림에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것은 그림의 언어화를 의미하는 동시에 언어의 이미지화를 의미한다. 작가는 본인의 아카이브에서 나온 스캔된 단면들, 자신의 오래된 작업뿐만 아니라 인터넷이나 TV 혹은 다른 정보매체에서 모은 이미지 자료들을 혼합하여 사용한다. 그 각각의 이미지들은 포토샵을 통해 추가로 작업되는데, 이를 통해 본래의 이미지로부터 매우 낯설어 진다.


1999년 이후 피터 짐머만은 자신의 이미지 아카이브에서 선별된 사진들을 포토샵을 통해 변형시킨 후 부분적으로 다시 작업하기 시작한다. 인터넷에서 찾은 이미지를 컴퓨터를 통해 디지털화 시키며 그 결과물을 다시 회화로 전환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기존의 데이터 이미지는 추상적 미의 결과물로 변환된다. 이 과정은 요즘의 거의 모든 매체의 공정 과정을 따라 하는 것으로, 구체적 이미지의 추상화가 기술의 지속적인 결과물임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러한 점과 원으로 구성된 추상적 형태들은 그 다음 단계에서 유기적으로 보이는 형태로 변경되어 매우 짙은 농도의 색채를 띠며 부조와도 같은 다양한 층층으로 화면의 표면을 덮는다. 에폭시로 만들어진 다층의 흐르는 듯한 표면은 매우 반짝이며 무지개 같은 효과를 내어 보는 이로 하여금 허상의 윤곽을 보게끔 한다. 때때로 그림의 색깔들은 조화로운 듯 하다가 섬광을 비추는 듯하고, 커다란 구조를 가진 듯 보이면서도 선적이다. 또 때때로 역동적이다가 질서정연하다. 그림 요소들의 집합은 넓은 면적의 색의 구현과 선적인 색의 구조 사이를 오가는 다양한 구조 틀을 보여준다. 그 후 2004년부터 화면을 분할하고 구성하는 기하학적인 작업을 더 강하게 추진 해오고 있다. 수많은 그림들의 총체로서의 작품은 실험적인 열린 상태를 나타내며 다양한 모습 속에서 각기 다른 그림 구조를 보여준다. 최근의 작품에서는 모더니즘의 전형적인 그림모형이라고 할만한 공식적인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피터 짐머만의 작업 ‘컨셉’은 컴퓨터 기술을 통해 디지털로 구성된다. 반면, 그 ‘실행’은 어떤 도구를 통해서가 아니라 캔버스에 직접 색칠을 하는 화가의 손을 통해 이루어진다. 완성된 작품의 표면은 반짝이는 매끈함과 빛나는 색채라는 감각적인 물질성을 갖게 되며, 이로 인해 이 회화의 컨셉이 컴퓨터로 제작된 것임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 회화 작업의 농축적인 색감과 층층이 겹쳐진 부조적 성격은 디지털 매체로는 이룰 수 없는 특성이다. 작업의 제작과정에서 컴퓨터 기술은 오로지 회화를 돕는 것으로만 사용되었고 이 회화들은 컴퓨터로 생성된 디지털 이미지의 모티브를 캔버스에 옮기는 과정을 통해 가상화 되면서 잃었던 측면들을 도로 갖게 된다 완성된 작품은 사진이나, 영화, 비디오예술과 비교해서 봤을 때 미디어 예술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작품은 고유한 회화적 가치를 생산해낸다 – 물질성, 그것은 회화와 미디어 매체 이미지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만지고 싶을 만큼 감각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는 작품에 대해 피터 짐머만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반짝임은 회화에 대한 의견에 가깝다. 유화, 그리고 강한 붓질과 같은 반 고흐 스타일은 내가 연관되고 싶지 않았던 클리셰(Cliché)이다. 이러한 표면을 발견했을 때, 나는 이것이 오늘날과 같이 미디어 지배적인 시대에 회화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좋은 의견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나의 처음 아이디어는, 결과물을 프린트 하자는 것이었는데, 주 작업은 컴퓨터로 하고 그저 그 작업을 프린트 하려고 했었다. 그게 기계에서 무언가를 얻어내는 가장 명확한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린트 물들은 모두 같아 보인다는 걸 알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 회화라는 아이디어로 돌아오게 되었다. 나는 노랑, 마젠타, 파랑의 레이어가 들어간 프린트물의 구조와 비슷한 프로세스를 갖게 되길 원했는데, 레진으로 이러한 다양한 색체들을 오버랩 하면서 그런 작업하는 것이 가능했다.


작가는 이러한 작업들을 통해 전통적인 회화적 컨셉들을 해체하고 시각적 관습에 따라 형성된 문화적 의미의 힘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그것은 커버 버젼, 샘플링, 리믹싱 등의 다양한 시뮬레이션 기술을 이용해 그가 그림에 실현시키는 속임의 미학이다. 시각의 매체화는 컴퓨터의 방식과 기술을 따른 것이다. 화려하고 감각적인 회화 표면의 물질성은 이것이 회화의 생산품임을, 유니크함의 표본임을 느끼게 한다. 그림은 매혹적이고 반짝이는 하나의 사건으로서 그 우연적인 순간은 스스로 모더니티의 패러다임을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