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개
 
조현화랑 부산에서는 2012년 9월 6일부터 10월 7일까지 장리라 개인전을 선보인다. 한국에서의 첫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작가만의 위트로 일상의 낯익은 물건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던져주며, 변형된 모습을 통해 각 물건이 담고 있는 사물의 정의와 본질의 경계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작품들을 선보인다.
 
“ 층고가 각기 다른 방들로 이루어진 공간은 그 다음에 무엇이 나타날지 모르는 동굴탐사처럼 미지의 장소를 향하게 한다. 그러나 전시 공간은 동굴처럼 어둡거나 비좁지는 않다. 석순처럼 바닥에서 올라오거나 천정에서 내려오는 구조물들은 모두 하얗다. 마지막 방에 안치된 동물상들과 기묘하게 생긴 가구들 역시 그렇다. 공간을 채우는 사물들은 하얗게 칠해진 표면만큼이나 인공적이다. 첫 번째 방에서 만나게 되는 탑 같은 형태는 가구의 다리를 만들 때 쓰는 돌려 깍기 기법으로 둥글려진 나무들이 수직으로 쌓여 있다. 두 번째 방에서는 고드름처럼 천정으로부터 하얀 입방체들이 내려온다. 첫째, 둘째 방에서 발견되는 대칭과 정방형 구조는 자연에서는 발견되지 않으며, 하얀 표면은 나무나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진 본래의 재질을 숨기고 있다. 마지막 방에서는 아래서부터 올라온 가구 다리와 위에서부터 내려온 박스들이 합체된 듯한 것들이 모여 있다. 그 위에 올려놓은 동물상들은 마치 박스 안에서 꺼낸 듯한, 또는 곧 그 안에 넣어질 듯하다.
 
가구다리와 박스, 동물상이 합체된 형태는 수직으로 쌓기라는 공통된 방식을 보여준다. 장리라의 이번 전시에서 주된 방법론인 쌓기는 비좁은 일상공간에서 무엇인가를 첩첩이 쌓아놓을 수밖에 없는 생활 경험으로부터 왔다. 이전 작업에서 벽을 타고 구부러진 소파 같은 초현실적 가구들은 유학시절 좁은 집에서 부대끼면서 생성된 상상이었다.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나 그 안을 채우는 물건들은 늘어만 가는 것이 현대 소비사회의 특징이다. 공간에 한자리씩 차지하고 있을 법한 것들을 죽 쌓다보면 서로 이질적인 것들도 기묘한 어울림을 낳는다. 수직으로 쌓여진 것들에서는 이상한 시선이 느껴지기도 한다. 수직은 수평과 달리 살아있음의 특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물건을 옮기기 위해 거칠게 만들어진 나무 박스는 매끄럽게 표면처리가 된 우아한 가구다리가 붙어있으며, 동굴벽화가 그려지던 신화의 시대부터 인간과 함께 해온 동물들은 포장과 이동이 용이한 현대적 사물의 방식과 결합되어 있다. 토템처럼 보이는 원시적 동물상과 현대의 일상적 기물이 만난다.
 
동물상들이 섬처럼 모여 있는 한편, 여행용 트렁크 가방이 첩첩이 쌓인 것과, 앉는 또는 무엇인가 놓여 질 부분이 스폰지와 인조털로 둥글게 부풀려진 것은 쌓기가 만들어낸 변형, 그리고 변형에 내재된 물활론적인 분위기가 있다. 수직 방향으로의 상승은 유기체의 성장을 연상시킨다. 이번 전시에 주로 보여주는 동물머리 작업들은 이전에 만들었던 초현실적 가구들이 유기체적인 느낌을 주는데서 출발하였다. 작가는 고정되어 붙박혀 있곤 하는 가구를 변형시키는 과정에서 유기체적인 꿈틀거림을 발견한 것이다. 세라믹과 FRP 등으로 만들어져 재질감의 차이를 가지고 있지만, 하얀 도색을 통해 통일감을 주는 동물 형상은 일종의 좌대 위에 위엄 있게 배치된다. 등장하는 동물들은 양, 토끼, 고양이, 멧돼지, 수달, 강아지, 올빼미 등이며, 미어 캣과 부엉이는 머리가 셋으로 되어 있는 등 신화적인 형태가 있다. 기념비적 형태를 갖춘 동물들은 좌대 위에 놓여 져 추앙되고 공간을 지배한다. 동시에 그것들이 놓인 자리는 물건을 담아 나른 후 폐기되는 포장 용기처럼 일시적이다.
 
그것들은 자못 기념비적 양식을 갖춘 듯하지만, 그 토대는 취약하다. 싫증나기 쉬운 장식품처럼 그 존재감이 희미하다. 동물상들은 신화시대의 상징적 우주에서처럼 견고한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대의 기념비는 그것을 향유할만한 공동체가 존재하지 않기에, 상징의 힘을 잃고 세워지자마자 몰락의 기미를 띠며 대부분 장식물로 전락한다. 세라믹이나 자동차 도료와 마감된 표면에는 장식적인 면모가 있다. 신화 속의 동물들은 이제 거대한 문화산업의 도구가 되어 상품으로 유통되기 용이한 방식으로 변화한다. 포장용기로 이루어진 좌대는 유통의 회로 속에 편입된 자연을 암시하는 듯하다. 하얗고 매끄럽게 가공된 동물들은 자기 본래의 색을 잃고 현대적 상품의 코드에 맞추어 탈색된다. ‘색깔’은 정체성을 드러내는 1차적인 코드이다. 이 동물상들은 자기색이 없는 것이다. 종과 관계없이 모두 매끈한 하얀 표피로 마감된 동물들은 원래의 거친 야생성을 숨기고, 위생 도기류의 청결함과 깔끔함으로 포장되어 있다. “
– ‘쌓기로 섞기’ 이선영 (미술평론가) –
 
Artist’s Statement
-Tete D’animaux (동물머리)
동물의 머리 작업은 가구의 변형을 통해 보여지는 형태가 유기체적인 느낌을 주는데에서 출발하였다.
변형이 된 가구들이 능동적이던 수동적이던 간에 어떠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면, 실제 움직이는 대상들이 변형이 되었을 경우에 대한 연구이다.
가구 작업과 마찬가지로 선택된 동물의 특징적인 한 부분을 과장시키거나, 크기를 변화시키거나, 조합을 달리하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대상의 형태를 변형시켰다. 변형은 역시 적극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는다.
흰색의 반짝거리는 재질들로 만들어지는 동물의 머리는 살아있는 동물을 재현하려고 하였지만, 자연스럽기보다는 낯설기만 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은 장식미술과 순수미술의 사이, 동물과 사람의 사이, 동물과 동물의 사이를 오고가며 가구 작업과는 다른 방식으로 현실과 이상향의 타협점을 찾는다.